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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

아르키메데스

허당쌤 2022. 10. 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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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키메데스 그는 누구인가?

고애 그리스의 전설적인 수학자, 시칠리아의 시라쿠사에서 천문학자 피디아스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젊은 시절부터 절묘한 기술력의 발명품을 선보였다. 이집트에 유학해 있던 중에 나선의 원리를 응용해 나선식 펌프를 발명했고 알렉산드리아의 무세이온에서 수학자 코논에게 기하학을 배우고 시라쿠사로 돌아와 수학자로서 많은 책을 저술했다.

 

원의 지름과 원주의 길이를 직접 비교하는 방벙ㅂ이 아닌 수학적인 증명으로 원주율의 근사치를 최초로 계산하였으며, 그가 발견한 구분구적법은 '적분의 시초'가 되었으며, 그 때는 아직 방정식이라는 개념이 없었고, 0의 개념은 약 800년 뒤에야 등장했기 때문이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당시에는 0이 없었고 당연히 해석학과 측도론은 개념 조차 전혀 잡혀 있지 않았는데 구분구적법과 무하소 개념을 깨우친 것이다.

지랫대의 원리

지구의 무게는 약 6 곱하기 10의 24승이다. 아르키메데스의 몸무게를 알 방법은 없으므로 대략 60kg의 남성이라고 가정하면 이 무게의 지그를 지렛대로 들어올리려면 지렛대의 길이가 어마어마해야 할 것이며 엄청난 시간 또한 필요하다. 지렛대의 원리상 함정과 받침점 작용점이 있으며 (받침점과 작용점의 거리) ; (받침점과 함정의 거리)의 비 만큼 적은 힘으로 물체를 들어올릴 수 있지만 반대로 함정은 작용점에 비해 그만큼 더 먼 거리를 움직여야만 한다.

 

위의 수치대로 6 곱하기 10의 24승kg의 지구를 60kg의 남성이 들어올릴 때 받침점과 작용점의 거리가 1m라면 작용점과 힘점의 거리는 최소 10의 23승m가 되어야 하며, 이 경우 지구를 1cm들어올리려먼 지렛대를 10의 18승km를 움직여야 하는데 이는 약 105광년 거리이다.

순금 왕관, 일명 유레가 일화

아르키메데스의 유명한 일화로 유레가 일화이다. 어느날 히에로 2세가 순금으로 왕관을 만들었는데, 장인이 정직하게 순금으로만 만든 것인지 의심을 품은 왕은 아르키메데스를 불러 순금관의 진위여부를 판단하게 했고,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목욕탕에 들어간 그는 물 속에 몸을 넣자 넘쳐 흐르는 물을 보고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라 옷도 입지 않은 채 '에우헤카! 에우레카!를 외치며 뚜쳐나간다.

 

왕관과 똑같은 무게의 금 견본을 준비해 각각을 물에 담가서 넘쳐 흐르는 물의 양을 비교했으며, 실험 결과 왕관을 넣었을 때 더 만ㄶ은 양의 물이 넘쳐흘렀고, 이 사실로 왕관이 금보다 비중이 낮은, 다시 말해 순금이 아니라 다른 재료가 섞여잇다는 사실을 밝혀내어 공금을 횡령한 장인을 잡을 수 있었다. 이 일화가 매우 유명하여 현재 여기에는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아르키메데스의 사망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시라쿠사는 타르타고의 편을 든 탓에 로마의 공격을 받게 되엇으며, 그러나 시리쿠사는 아르키메데스에게 의뢰하여 갖가지 신무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지렛대와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한 투석기와 기중기, 그리고 잘 갈아 만든 청동 거울들로 거울로 햇빛을 반사시켜 로마군의 배를 불태우고 투석기로는 거대한 돌을 마구 날려댔으며 기중기로 로마군의 배를 멀리 던져버리는 가공할 만한 무기들이었다고 전한다.

 

사실 이 거울의 신빙성에 대해서는 논란이 잇다. 이 청동거울로 빛을 집중시켜 배를 태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며, 근대에는 데카르트가 유명한 부정론자였고 현대에는 영국의 광학자인 D.L. 심즈가 실험을 통해 불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로마군의 사령관이었던 마르켈루스는 정면공격은 어렵다고 판단해 우회공격을 하기로 하고, 시라쿠사 사람들이 승리에 도취되어 아르테미스 축제를 열고 술에 취해있는 틈에 시라쿠사를 습격하여 성을 함락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아르키메데스는 그 와중에도 모래판에 원을 그려놓고 연구에 몰두 중이었는데 마르켈루스의 명령을 전달받은 한 로마 병사가 잠입했으나 아르키메데스를 몰라본 그 병사가 그원을 밟지말라 고 말한 것에 격분해 그가 아르키메데스라는 것도 모른 채 그만 죽이고 말았다. 마르켈루스는 아르키메데스의 죽음을 애석해하며 예의를 갖추어 그를 안장하고 아르키메데스가 원하던 뵤비인 원기둥에 구가 내접한 모양의 묘비를 세워 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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