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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학 해석학 기하학 등 여러 방면에 걸쳐 뛰어난 업적을 남겼으며, 19세기 최대의 수학자라고 일컬었다. 수학에 이른바 수학적 엄밀성과 완전성을 도입하여 수리 물리학으로부터 독립된 순수수학의 길을 개척하여 근대 수학을 확립하였으며, 특히 전자기학 천체역학 중력론 측지학 등에도 큰 공헌을 했다.

 

브룬스 비크에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빈궁한 가운데 성장하였으나, 일찍부터 뛰어난 소질을 보였 어머니와 숙부의 노력으로 취학하여 10세 때 등차급수의 합의 공식을 창안하는 등 신동을 알려져 브룬스 비크 공 페르디난드에게 추천되어 카롤링 고교를 거쳐 괴팅겐대학에 진학, 고교시절에 이미 정수론 최소제 공법 등으로 독자적인 수학적 업적을 올렸는데, 괴팅겐대학 재학 시절에 정 17 각형의 문제에 열중한 것이 수학의 길을 선택하기로 결심한 계기이다.

 

가우스는 헬름슈테트 대학으로 옮겨 22세 학위를 받아 그 후 다시 브룬스 비크로 돌아와 페르디난드 공의 도움을 받으면서 수학을 계속 연구하였으며, 1802년에 간행된 명저는 2차의 상호 법칙의 증명을 풍이 하였으며, 합동식의 대수적 기법을 도입하여 이 분야에 획기적인 업적을 쌓아 올렸으며, 학위 논문에서 이룩한 대수학의 기본정리의 증명과 더불어 학계에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가우스에게 대학에서의 지위를 가져다준 것은 오히려 천체역학에 관한 업적이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당시 학계에서 뉴턴 역학의 영향이 얼마나 컸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1801년 소행성 케레스가 발견되자 이 별의 궤도결정이 문제로 대두되었으며 가우스가 이를 계산해 내어 해결한 공을 인정받아 1807년에 괴팅겐대학 교수 겸 천문대장으로 임명되어, 1800년 이후 가우스의 연구는 대략 4기로 구분할 수 있다.

 

제1기 소행성의 궤도결정을 시작으로 천체역학을 연구하던 1820년까지의 시기, 이 시기의 연구는 천체 운동론에 집대성되어 있으며, 수학 분야에서는 초기하급수의 연구 및 복소 변수의 함수론의 전개가 있다.

 

제2기 측지학에 관계한 시기, 1821년에 하노버 정부와 네덜란드 정부의 측지 사업의 학술고문으로 위축받은 일이 계기가 되어 곡면론의 검토, 곡률의 문제, 등각 사상의 이론, 그리고 곡면의 전개 가능성 등을 고찰하였다. 이것은 미분기하학으로 향하는 최초의 일보이며, 정수론의 영역에서도 주로 4차의 상호 법칙 연구에서 비롯하여 복소 정수의 연구에 이르러 대수적 정수의 이론을 창시하였으며, 아이제 슈타인 쿠머, 데데킨트 등에게 계승되었으며, 데이터의 처리와 관련하여 1821 ~ 1823년의 논문에서 최소 제곱 법을 이론화하여 통계에서 가우스 분포의 의의를 강조하였다.

 

제3기 1830년부터 10년간으로서 주요 관심사는 물리학 쪽으로 옮겨져 갔으며 특히 W. E. 베버와의 협력 아래 추진한 지구 자기의 측정 및 이의 이론적 체계화가 두드러진 업적이며, 괴팅겐에 자기 관측소를 설립하고, 측정을 위하여 자기 기록계를 제작하였으며, 또한 절대 단위계를 도입함으로써 전자기학의 기초를 닦는 데 공헌하였으나, 한편으로 퍼텐셜론을 전개하여 이것의 수학적 기초의 수립을 추진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신기의 발명과 모세관현상의 연구 등도 이 시기에 이룩한 것이다.

 

1840년경부터 만년에 이르는 제4기에는 오늘날 위상 해석학인 위치 해석학 및 복소 변수의 함수와 관련하여 기하학을 연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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