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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수학자 르네 데카르트는 누구인가

르네 데카르트는 근대 철학의 포문을 연 프랑스의 철학자, 수학자, 과학자이며, 그는 방법적 회의를 통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것이야말로 모든 것을 의심하더라도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진리라 확신하고는, 이를 모든 학문의 제1 원리로 정립하였다고 한다.. 데카르트는 '생각하는 나는 존재한다'는 학문의 제1 원리를 기반으로 하여 다시 신 존재를 증명해내고, 이를 다시 물질세계의 진리성을 확보하기 위한 발판으로 마련하여 마침내 자연과학적 방법으로 물질 세게의 확실한 진리를 찾을 수 있다는 논리적 근거의 순서를 제시하였다.

 

그리고 물질세계에서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그 물질이 특정한 공간을 차지한다'는 사실이며 '연장'에 있다고 보고 이로써 물질세계는 수학적으로 계산 가능한 공간이며 계산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은 자연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데카르트의 이러한 철학적 방법론은 이후 근대의 수많은 학자들을 자극시켜 자연과학과 수학에 있어서 급격히 발전을 이끌어냈으며 서양이 중세를 벗어나게 된 그 결정적인 동력을 데카르트가 제공하였기에 그를 두고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다.

데카르트의 유년시절

학문적으로는 능력자였으나 몸이 많이 약한 편으로 그의 어머니에게서 유전된 듯하며 이 때문에 데카르트의 아버지는 아들도 아내처럼 일찍 죽을 것을 걱정하여 학교를 가고 싶다는 것을 말리고 강제로 쉬게 했으며 8살이 되던 해에 예수회 계열 학교인 라플레슈에 입학해 8년을 공부하는데 몸이 약해 학교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고 하며 수업을 그렇게 듣지를 못했는데도 철학자들이 대부분 그렇듯 공부는 무지 잘했고 그의 재능을 꿰뚫어 본 어는 관대한 교장이 수업을 듣는 대신에 그 시간에 늦게까지 잠을 자는 것을 허락했다고 한다.

 

늦잠 자는 버릇은 이때부터 시작된 듯하며 이런 늦게까지 침대에 있는 습관에서 그는 사색과 생각을 많이 하여 생각들이 훗날 그의 사상에 많은 도움을 줬다. 대표적인 업적이 후술 할 좌표의 발견인데 날벌레가 천장에 붙어있는 것을 보고 저 날벌레의 위치를 계산하려다가 만들어진 것이 바로 좌표의 발견이다.

데카르트의 군인 시절

당대의 프랑스를 주름잡던 검술 마스터 샤를 베나르에게 검술을 배웠으며, 20대에는 여행을 통해 세상을 배우기 위해서 군인이 되기로 결심을 한다. 학창 시절 때처럼 아주 골골대진 않았으며 사병 복무에 검술 수련도 열심히 하고 자신의 애인에게 무례하게 군 연적에게 기사도의 방식으로 결투를 하여 잔뜩 혼을 내주는 등 칼싸움에 능한 무사였다. 그리고 여행 도중 뱃사람들이 데카르트를 죽이고 재물을 빼앗으려고 하는 위기도 있었는데, 그는 자신을 죽이려 드는 해적들의 칼을 빼앗아 그들을 제압하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기록도 있다.

데카르트의 세 번의 꿈과 학문

30년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접한 데카르트는 전쟁을 눈으로 목격하고 싶다는 생각에 독일의 구교에 속하는 바이에른 위하 군대에 들어가고 그곳에 있으면서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페르디난트 2세의 대관식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중 독일 남부 울름 근교의 작은 마을에 머문 게 된다. 그리고 1619년 11월 10일에서 11일로 넘어가는 밤 커다란 벽난로가 지펴진 '난로 방'에서 데카르트는 역사상 가장 유명하며 자주 분석되는 꿈을 꾸게 되는데 그는 따뜻한 벽난로 앞에서 잠시 졸았는데, 이때 그 유명한 세 번의 생생한 꿈을 꾼 것이다.

 

첫 번째 꿈은 거리를 걷다가 거센 폭풍이 불어서 필사적으로 아무 건물로 들어갔는데 마침 그 건물이 그가 다녔던 라플라 슈 학교였으며 캠퍼스에는 그가 잘 아는 성당이 있었다. 그 성당으로 들어가려다가 아는 사람을 그냥 지나쳤다는 것을 깨닫고 그에 말을 걸기 위해 발길을 되돌렸는데 괴팍한 바람이 성당 쪽으로 그를 강하게 밀쳤다. 그 순간 다른 지인을 보았고 그는 데카르트에게 ;N이라는 사람이 외국에서 사 온 멜론을 주기로 했는데 그를 만날 수 있느냐'라고 물어봤으며 이 순간 갑자기 바람이 잦아들었고 그때 데카르트는 꿈에서 깼으며 잠에서 깬 그는 '깊은 슬픔을 느꼈으며 이것은 나를 현혹시키려는 악마의 소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죄악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하늘이 폭풍으로써 경고를 한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이 세상의 선과 악을 생각하며' 두 시간이나 잠을 설쳤다고 한다.

 

두 번째 꿈은 데카르트가 방안에 있었는데 방이 희미해지더니 갑자기 귀청이 찢어질 듯 한 날카로운 굉음이 들렸는데 그는 이를 천둥이라고 생각했고 첫 번째 꿈의 폭풍이 다시 찾아왔지만 이번에는 마치 환각처럼 느껴졌으며 그가 안전한 방안에 있었기 때문에 사나운 비바람이 그에게 닿을 수 없었던 까닭이었다.

 

마지막 세 번째 꿈에서 그는 백과사전이 놓인 책상에 앉아 있었는데 백과사전을 집으려고 손을 뻗었을 때, 그는 <시선집>이라는 라틴어 제목이 붙은 또 다른 책을 발견했으며 그는 이 책을 아무렇게나 펼쳤는데 거기에 시 한 편이 있었고 로마 시인 아우소니우스가 쓴 <이딜 XV>라는 시였는데 그는 첫 행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인생에서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때 낯선 사람이 나타나 그에게 제목이 "예, 그리고 아니오'인 아우 소니 우스이 다른 시를 내밀었는데 그는 시선집을 잡으려 하자 그 책이 사라졌고 다시 백과사전이 나타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에 보았던 것만큼 완전한 형태가 아니었으며 그때 낯선 사람도 책도 사라졌다.

 

다음날 온종일 그는 세 가지 꿈에 대해 생각했으며 이 꿈이 자신을 학문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라 믿었다. 결국 1621년 군인의 길을 포기하고 이후 5년간 여행을 하면서 순수 수학에 몰두하였으며 이때 함수의 원리를 처음 계발하였으며 1626년 파리에 정착한 그는 소일거리로 광학 기구를 만들던 중에 1628년 당시 파리의 추기경이었던 피에르 드베륄과 만나는데 추기경은 그와의 대화에서 그의 명석함에 감명을 받아 오로지 진리탐구에만 전념할 것을 권했으며 추기경의 충고를 받아들여 모든 간섭과 의무를 피해 다시 네덜란드로 건너가 수학과 그리고 과학연구에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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